宋洞_ 송동 조선 선비 풍류문화 박물관
잊혀진 지명과 산수를 생각하며 선비 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찾다
고재형
조선 시대 명승지는 남산, 정릉 인왕산, 청풍계등이 있다. 그중 송동은 조선시대의 정치적의미와 문학적의미의 장소성을 가지고 있는 장소이다. 송동은 우암 송시열의 성인 송씨를 따와서 송동이라 불려졌으며, 후에 성균관으로 소속되면서 지역일대에는 서당이 많아지고, 산수가 좋아 교육적인 공간이면서 문화적인 공간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점차적인 발전으로 인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던 이곳은 주거 밀집 지역으로 바뀌게 되면서 자연경관은 한양도성이 남아있는 와룡공원 일부분 밖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명승지를 보면서 그렸던 자연의 조촐함속에서 보이는 이상향을 시,시조,산수화를 통해 나타내듯이 이를 재해석하여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가졌던 과거와 너무나 많은 욕심으로 바뀐 현대 모습을 생각하면서 깨달음 줄 수 있는 선비 문화 전시공간과 조경휴게공간을 계획하였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자연을 가까이하며 풍류를 즐기며, 시와 시조를 읊고, 산수화를 그리며 자연의 조촐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자신의 이상향을 나타내었다. 자연의 조촐함 속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을 무분별한 발전으로 파괴되는 자연을 건물 내부 공간에서 조성하면서 조촐함 속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을 보이고자 하였다.
선비의 정신중 하나인 자연의 순응을 적용하여 경사지의 형태와 기존 오솔길의 기능성을 유지하고자 중앙 외부공간에 2개의 계단을 두었고 이로 인해 두 개의 메스로 나눠지게 된다. 주변 건물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한쪽 메스의 일부분을 꺽었으며, 선비들의 교육공간인 서원의 누각을 연상하여 남쪽 진입광장 쪽의 메스를 이어 주는 브릿지를 두었다.
선비의 문학공간인 서원의 공간 배치는 교류공간-교육공간(문학공간-제향공간 순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를 반영하여 진입광장에서부터 주민들과 방문객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두었고 이후 더 들어가면 전시공간과 문학공간을 두었으며. 제향공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치 하였다.